들국화 (최 진연)

이재경
2008-10-23 21:2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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본문
들 국 화
최 진 연
푸른 계절이 저무는 광대한 제단 위에
자연은 그해 마지막으로
가장 오염되지 않은 꽃을 드리고 있었다.
칼을 쓴 춘향이
산발로 앉아 비몽사몽 헤메는 밤
밖에는 비가 그쳤는지
구름 사이 언뜻언뜻 님의 얼굴 흐르는지
연지 볼이 젖다 마르다
달빛에 반짝이는 눈물 눈물자국.
자기의 관에 망치질 하는 소리를 듣고
애통하는 복된 자가 그리 많지 않은데
제 임종을 바라보며 벌레들이 우는 소리
방울방울 매달린 그 무게를 더러
억세풀 서리에 쓰러져 누운 들국화들
떠나는 모든 것을 곁에서 슬퍼하며
푸르름을 자랑하던 여름 회상과
눈보라 치는 겨울의 예감속에
입이 붙어 버린 듯 서 있는 나무들
꾀꼬리 떠났다고 서러워 마라
떠난 것은 다시 곧 돌아 오리라.
푸른 계절이 저무는 장엄한 제단위에
마지막 바쳐진 꽃의 제물
순결한 빛과 향기 골짝 가득 드리며
신에게 고개 숙여 경배하는 들국화들
소리 없는 겨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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