들국화 < 노 천명 >

이재경
2003-01-22 18:1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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본문
비탈진 들녘 언덕에 늬가 없었던들
가을은 얼마나 쓸쓸 했으랴.
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
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
이름도 모를 풀틈에 섞여
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빈 들의 색시여.
갈 꽃보다 보드러운 네 마음 사랑스러워
거친 들녘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았다.
한 아름 고히 안고 돌아와
화병에 너를 옮겨 놓고
거기서 맘대로 자라라 빌었더니
들에 보던 그 생기 나날이 잃어 지고
웃음 걷운 네 얼굴은 수그러져
빛나던 모양은 한 잎 두 잎 병들어 갔다.
아침마다 병이 넘는 맑은 물도
들녘의 한 방울 이슬만 못하더냐?
너는 끝내 거친 들녘 정든 흙 냄새 속에
맘대로 퍼지고 멋대로 자랐어야 할 것을.
뉘우침에 떨리는 미련한 손이
이제 시들고 마른 너를 다시 안고
푸른 하늘 시원한 언덕 아래 묻어 주러 나왔다.
들국화야.
저기 너의 푸른 천정이 있다.
여기 너의 포근한 갈 꽃 방석이 있다.
노 천 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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